[이커머스 법률가이드] #6.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 ‘신뢰 = 책임’ 원칙만 지키면 된다.

작년 말 발의된 전자상거래법(전상법) 전부개정안을 두고, 올해 초 이커머스 업계와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사이에 여론전이 뜨겁습니다. 

공정위는 대통령 보고에 전자상거래법 전면 개정을 올해의 업무계획으로 포함시키면서 규제 강화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고, 오픈마켓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계는 과잉 규제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습니다.

규제 강화를 원하는 쪽에서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를 보여주고 판매자를 이어주는 ‘중개’ 역할을 넘어 결제와 배송에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과잉 규제라고 주장하는 측은, 중개자인 이커머스 플랫폼은 그 본질상 전자상거래의 주체가 아니며 소비자에 대한 책임이 강화될 경우 오히려 영세 판매자에 대한 벽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느 쪽 말이 맞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소비자가 믿고 구매한 곳'이 책임을 지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전통시장과 이커머스를 비교합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그 시장에 잘못된 물건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당연합니다. “OO시장"이라고 쓰인 시장 입구로 들어간 소비자는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물건을 사기 전에 그 안에 있는 실제 가게에 붙어 있는 “XX상회"라는  간판과 주인 얼굴을 직접 보고 물건을 사기 때문입니다. 

이 소비자는 분명 “XX상회"를 믿고 물건을 산 것이지 “OO시장”을 믿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OO시장에 좋은 물건이 많다는 점 정도는 생각하고 교통비를 들여 그 시장으로 향하긴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커머스, 웹과 앱을 통해 수많은 상품을 사고 음식을 배달 받고 서비스 티켓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을까요? 

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배달 받는 소비자가 배달앱을 믿고 음식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배달앱 안에 있는 실제 음식점의 상호와 후기를 믿고 음식을 주문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상한 음식에 대한 책임은 음식점이 지면 됩니다. 공연 티켓을 사서 관람했는데 티켓을 판매한 이커머스에 공연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품은 어떨까요? 

온라인에서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오픈마켓들은 G마켓, 11번가와 같은 자신의 플랫폼으로 브랜드 광고를 크게 합니다. 그리고 상품 진열대라고 할 수 있는 웹이나 앱의 맨 위에는 오픈마켓의 브랜드 이름이 크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실제 입점하여 상품을 팔고 있는 판매자들의 이름과 연락처는 상품을 소개하는 페이지 어딘가 적혀 있지만, 썩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소비자의 1차 신뢰는 ‘내가 들어본 익숙한 이름’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 판매자는 대부분 들어보지 못한 이름입니다. 따라서 오픈마켓들은 실제 판매자들보다 자신의 플랫폼 브랜드 - 대대적인 광고 등을 통해 많은 소비자가 ‘아는 이름’이 된 - 를 강조하는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라인 오픈마켓이 결정적으로 오프라인 시장과 다른 점은, 시장 안에 있는 상품들을 가게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시장 입구에 하나로 모아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 단계에서 실제 판매자를 인식하고 신뢰를 형성할 가능성이 훨씬 낮아집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구매한 물건에 문제가 있는 소비자는 제일 처음 어디로 가게 될까요? 당연히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내가 구매한 곳(일명 구매처)’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 친구가 “그거 어디서 샀어?”라고 물어볼 때 나오는 이름, 바로 그 곳이 소비자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신뢰를 형성한 곳’이고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비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비자가 신뢰한 곳과 책임질 곳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문제였습니다. 결국 전자상거래법을 전면 개정하게 된 것도 이러한 문제가 누적되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프라인에도 허가를 받았다면 누구나 영업이 가능한 노점부터 입점 만으로 신뢰가 쌓이는 백화점까지 다양한 형태의 매장(혹은 상점, 가게)이 있듯이, 온라인에서도 어떤 이커머스 플랫폼이 실제 판매자를 드러내면 낼 수록 신뢰와 책임은 판매자에게 가고 자신의 브랜드를 강조하면 할 수록 소비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책임은 플랫폼 스스로가 부담하도록 하면 공평하고 합리적일 것입니다. 

오프라인의 ‘매장(혹은 상점, 가게)’와 같이 이커머스의 모습 역시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종합몰, 입점몰, 게시판, SNS, 포털’ 등 매우 다양합니다. 단순히 ‘이커머스’ 자체의 포괄적인 특성에 입각한 개정안은 시장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규제기관과 업계가 서로 유리한 사례만 강조하며 흑백논리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이커머스의 모습에 따라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유연한 전자상거래법을 새로 만드는데 합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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